멘탈 훈련소
5시 반에 못 일어난 날, 저는 하루 전체를 버렸습니다
수험 생활을 하던 시절, 저는 5시 반에 일어나야 하는 사람이었습니다.
정확히 말하면 5시 반에 일어나야만 괜찮은 사람이었습니다. 그 시간에 눈을 뜨면 그날의 저는 성실한 사람이었고, 그 시간을 놓치면 그날의 저는 이미 게으르고 정신도 못 차린 무조건 실패할 사람이었습니다.
몇 시에 일어났는지가 저에게 매겨지는 등급이었던 겁니다.
그래서 만일 6시 10분에 눈을 뜨게 되면, 저는 40분을 늦었다는 팩트를 너머 잔뜩 의미부여를 시작합니다. 하루 자체를 잃어버립니다.
늦게 일어난 그 순간 이미 그 날 하루가 망가졌다는 판정이 내려져버리니, 그 다음 단계도 자연스럽게 '이왕 이렇게 된 거' 하고 무너뜨리는 것이지요. 의지가 무너져 독재에 등원조차 하지 않은 날도 있었습니다.
실제로 늦은 시간은 40분인데 버린 시간은 열몇 시간이 되는 겁니다.
하루를 늦게 시작하면 그 날 하루를 통째로 날려버리기에 저는 더더욱 기상 시간에 집착할 수밖에 없었고, 잠을 잘 자야 한다는 이러한 강박이 불면증까지 야기해버린 것이지요.
왜 하필 저는 기상 시간에 집착했을까요. 한참 뒤에야 그 이유를 알았습니다.
수험 생활은 수능 성적이라는 굉장히 불확실한 목표를 향해 달려갑니다. 성적은 제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지요. 아무리 열심히 해도 다음 모의고사 점수가 반드시 제 뜻대로 나오리라는 보장이 없으니까요.
그런데 이와 달리, 기상 시간만큼은 순전히 제 의지로 만들어낼 수 있는 숫자처럼 보였습니다. 결과를 통제할 수 없으니, 통제 가능해보이는 것을 대신 붙잡은 것이지요.
어쩌면 여기까지는 오히려 자연스러워 보입니다. 수험생이니까 루틴을 고정시키고자 하는 게 당연하지요.
불안한 사람이 손에 쥘 수 있는 것부터 쥐려고 하는 건 당연하니까요.
하지만, 루틴에 대한 생각이 과해지면서 문제는 시작되었습니다.
기상 시간을 그렇게 붙잡는 순간부터, 그것은 하루에 대한 채점이 되었습니다.
만약 밤에 일어나는 사건으로 채점을 메긴다면, 그건 그 날 하루가 끝난 다음에 채점을 매기는 것이므로 그나마 낫습니다. 그런데, 아침에 채점을 매기다 보니 채점은 하루 중에서 아직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는데 결과부터 나옵니다.
책상에 앉기도 전에, 한 문제도 풀기 전에, 그날의 성적표가 이미 발급되어 있는 겁니다. 그리고 그 성적표를 손에 들고 하루를 시작하게 됩니다. 그 상태로 시작한 하루가 좋게 흘러갈 리가 없지요.
반대로 5시 반 기상에 성공한 날은 어땠을까요? 일어나긴 했습니다. 잇올 랭킹 1위로 키오스크에 기록되었지요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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