멘탈 훈련소
내가 하는 척만 하고 있다는 걸 사실은 나도 알고 있다
저는 다니던 독학재수학원에서 공부 시간 1위를 사수하고자 했습니다. 늘 새벽 다섯 시 반에 일어났고, 방음 문까지 달아가며 유난을 떨었습니다.
매일 출석부 1위에는 제 이름이 띄워져 있었고, 주변 사람들은 저를 보고 대단하다며 박수를 보냈습니다.
그런데 그 긴 시간 안에서 제가 정확히 무엇을 했는지 아는 사람은 오직 저뿐이었습니다.
저는 맹~한 상태로 이미 다 아는 강의를 배속으로 돌려보고, 졸린 것을 티 내기 싫어 의미 없이 빽빽한 필기만 하며 철저히 '공부하는 척'을 했습니다.
순공 시간은 정직하게 쌓였지만, 그날 제가 새롭게 할 수 있게 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. 저는 공부를 한 게 아니라, 공부하는 시간을 훌륭하게 연기하며 보낸 것이었습니다.
이런 저의 부끄러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, 생각보다 수험생들이 이런 '하는 척'의 함정에 아주 쉽게 빠지기 때문입니다. 스스로도 어렴풋이 찝찝함을 느끼면서도 그 사실을 애써 외면하곤 하죠.
제일 먼저 걷어내고 싶은 오해가 있습니다. 이렇게 '척'을 하는 이유는 결코 게을러서가 아닙니다.
게으른 사람은 애초에 새벽에 일어나 열두 시간씩 책상에 앉아 있지도 못합니다. 이 행동의 진짜 원인은 나태가 아니라 ‘두려움’에 있습니다.
진짜 공부는 원래 끔찍하게 무섭습니다. 모르는 단원을 펴는 순간, 내가 이만큼이나 부족하다는 사실을 날것 그대로 대면해야 하니까요. 수능 날짜가 다가올수록 그 부족함을 마주하는 고통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집니다.
반면, 이미 아는 것을 펴면 손도 바쁘고 진도도 잘 나가며 마음마저 편안해집니다. 즉, '하는 척'은 대충 하려는 마음이 아니라, 내 진짜 실력을 도저히 확인하고 싶지 않은 '회피'에서 비롯됩니다.
문제는 이 회피가 너무나 조용하고 교묘하게 스스로를 속인다는 겁니다. 하루 종일 안전한 것만 골라 하고도, 꽉 채워진 시간표와 순공 앱의 숫자를 보며 ‘오늘도 열심히 했다’고 안심하게 되니까요.
그렇게 매일매일 나 자신을 속이며 하는 척을 계속하는 사람은 결국 어떻게 될까요?
하는 척이 오래되면 공부 시간이 오히려 늘어납니다. 마음 한구석이 불안하니까 더 오래 앉아 있게 되거든요. 그런데 그 늘어난 시간마저도 계속 무난하고 안전한 것으로 채웁니다.
동그라미가 많이 나오는 쉬운 문제집, 이미 다 아는 개념 인강의 배속 재생 같은 것들로 빈틈없이 하루를 방어하는 식이지요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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